청룡기 2연패(47, 48년)와 황금사자기 3연패(47~49년)를 달성한 경남중학(현 경남고)의 주역인 황기대 선생을 만났습니다. 황 선생은 경남중학과 육군의 창설 멤버입니다.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 故 장태영 선생과 '전설의 좌완' 김양중 백구회 회장, 그리고 '아시아의 철인' 故 박현식 선생이 펼친 숙명의 승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3연패를 저지당한 제4회 청룡기 대회와 함께 어우홍 선생이 이끄는 동래중을 맞아서 어렵게 이기면서 황금사자기를 3연패 한 이야기 등등.

선생도 언급한 것이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서울운동장에서는 제2회 학도체육대회 경기가 열렸습니다.

"서울대 상과대학에 있을 때 6.25를 맞이했어. 당시에는 학도체육대회라는 게 있었거든. 성균관대랑 전날 11회 연장까지 갔지만,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어(이 경기가 한국 야구 최초의 일몰 서스펜디드 게임이다). 다음날 계속해서 연장 15회에 유두현의 적시타로 우리가 이겼다고. 원래는 이 뒤 두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난리가 났지. 그래서 각자 분산이 되어서, 피난 갈 사람은 피난 가고, 자기 고향 내려갈 사람은 내려갔어."

"그날 밤에 장태영이랑 박정표랑 같이 동대문에서 하숙하고 있었거든. 우리 셋이서 보따리를 쌌어. 동대문에 있는데, 부상당한 국군이 끝없이 오는 걸 보고 이거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지. 그때 비가 무지하게 많이 왔어. 그래서 동대문에서 걸어서 용산역까지 가서 대기하고 있었지. 근데 거기에서 자는데 폭탄이 터지면서 눈을 반짝 깬 거야. 셋 다. 용산역에서 셋이 또 헤어졌어. 박정표랑 장태영이는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고, 나는 다행히도 마지막 열차를 탄 거야. 내가 탄 열차가 가까스로 한강 철교를 통과하고 나서 폭파된 거야. 그래서 노량진에 도착해서, 수원에 은사가 있었거든. 거기까지 걸어갔어. 그분을 뵙고 임시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온 거지."

1953년 육군 창설 멤버로 야구를 하고 나서 한동안 야구계를 떠나 있다가, 1980년 서울시 야구협회 총무이사 겸 사무국장으로 다시 야구계로 돌아왔습니다. 1983년부터는 대한야구협회로 옮겨서 기획이사, 심판이사, 경기이사,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야기 중간에 故 김영조 선생 등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위의 책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인편에 부탁해둔 상황이라고 답했더니 거리낌 없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는 말씀과 함께 선물로 주시더군요. 이런 걸 시쳇말로 '득템'이라고 하는 거죠.

돌아오는 길에 대충 훑어보니까 故 김영조 선생을 비롯한 故 이영민 선생, 김일배 선생, 故 고광적 선생, 故 박현식 선생, 故 장태영 선생, 김양중 백구회 회장, 김성근 감독, 백인천 SBS 해설위원, 신용균 전 쌍방울 감독, 故 배수찬 선생, 김영덕 전 빙그레 감독 등 한국야구의 획을 장식한 수많은 별의 이야기로 가득하더군요. 당연히 내용 중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황 선생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 기자는 한 명도 안 찾아왔지만, 일본 기자는 많이 찾아온다. 이런 책도 한국에서 나와야 하는 데 말이다." 누구 탓을 하기 전에 이게 한국야구의 현실은 아닐까 싶습니다.


황기대

1927년 9월 19일생.

경남중학-서울대 상대-육군-상업은행.